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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b:포톤벨트:제6장

* 뉴에이지, UFO, 종교계등 손쉽게 접하는 대다수 정보는 잘못된 길로 유인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 Time Matrix 이전 우주연구 페이지들은 진실과 기만이 섞여 있으며 fib: 폴더로 구분해 남겨 놓았습니다.

제6장 아틀란티스에서 대홍수까지

와슈타와 텔레트론 그리고 미카는 레무리아의 파괴와 그 이후의 아틀란티스의 번영에 관해 계속해서 설명한다.

“레무리아의 붕괴 후, 아틀란티스는 은하인간 변절자들과 여러 무법자 부대 집단들(주로 알파 켄타우리와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전초 사령부들)로 구성된 은하연합의 동맹자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틀란티스의 동맹자들은 여러분의 태양계에 계층적 통치 구조를 강요하고 싶어했는데, 이런 계획의 근거는 바로 전 은하연합이 여러분의 태양계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변절자들은 인간관계의 법칙에 관한 자신들의 계층적 해석이, 은하연합의 보다 민주적인 해석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기를 원했습니다(인간관계를 다스리는 거문고 자리, 시리우스식의 4대 기본 사회법에 관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제9장 참조).

레무리아가 파괴되자 그 동안 어머니 제국인 레무리아에 의지하고 있던 방대한 조직의 딸 제국들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고, 가까운 미래에 다시 무슨 사태가 일어날 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 외에 당시 지구에서 중요했던 두 딸 제국은 아시아의 유(Yu)제국과 북부 아프리카의 리비아, 이집트 제국이었습니다.”

와슈타는 당시의 주요 제국에 대해 설명했다.

레무리아의 파멸에 뒤이어 리비아, 이집트 제국은(일련의 동맹을 통해서) 자국에서 어느 정도의 권위를 유지하는 것을 허용했던 아틀란티스인들과의 이해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리비아, 이집트 씨족들은 독립된 제국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아틀란티스인들의 요구에 의해 부분적인 개정에 동의해야만 했다.

아주 중요했던 또다른 제국은 아시아의 유 제국이었다. 레무리아라는 모국이 소멸된 후에도, 유 제국과 그 이식지들은 아틀란티스인들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틀란티스인들이 지구상의 다른 딸 제국들에게 사과하고 무력 행사를 즉각 중지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서너 번의 포고를 발령했다.

리비아, 이집트 제국의 원조를 받은 아틀란티스인들은 유 제국에게 그들의 포고를 즉각 취소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유 제국은 이를 거절했다. 아틀란티스와 변절자 동맹의 연합군은 보복으로 유 제국을 파괴했고, 제국의 잔존자들은 부득이 지하로 이동해야만 했다.

오늘날에도 그들은 아갈타(Agartha) 또는 샴발라(Shamballa) 왕국이라고 알려져 있는 나라를 형성하고 있다. 진정한 거문고자리, 시리우스 식 문명이 지구 위의 인간들에게 다시 실현될 수 있을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그들의 열렬한 행동은 레무리아의 영광스런 유산이 지구인류에게 고스란히 남이 있게 할 것이다.

아틀란티스의 융성과 몰락 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세 제국으로 그 역사가 나뉘었음을 알게 된다. 구제국(Old empires)이라고 불려진다(40만년 전부터 기원전 2만5천년까지 지속). 구제국은 레무리아와 공존했고 끝내는 그 파괴를 꾀했다. 두 번째 역사적 구분은 중기 제국(middle empires:기원전 약 2만5천년에서 기원전 1만5천년까지 지속)이라고 불려지며, 이것은 지구상에서 최초로 형성된 진정한 의미의 계층제 통치 국가였다. 마지막 기간은 신제국(new empires:기원전 1만5천년에서 기원전 1만년까지)이라고 불렸다. 이 시대는 아틀란티스 역사의 마지막을 이루는 최종적 알력과 파괴에 관한 모든 전설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틀란티스는 그 최후 소멸의 순간에 지구인간을 유전학적으로 격하된 돌연변이 상태로 남겨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직도 그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점차 깨닫고 있듯이, 이것은 곧 바로잡아지게 될 일시적인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약 2만5천년 전에 존재했던 레무리아의 파멸에 뒤이어진 중기 제국 시대의 아틀란티스를 이제 살펴보자. 레무리아의 파멸 후에 아틀란티스 사회의 중추는 지구와 그 제국들을 어떻게 재건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 아틀란티스 사람들은 완전한 권력자의 지위는 차지하되, 다른 제국들이 아틀란티스의 종주권 안에서 그대로 공존하는 것은 허용하기를 원했다. 이런 일련의 욕망은 많은 어려움을 초래했다.

첫 시도는 레무리아식 씨족 구조를 방대한 규모로 개편하고, 레무리아의 전통적인 사회 개념들을 아틀란티스식의 중추 구조(elite structure)로 대치할 정부의 수립이었다. 시작부터 이러한 시도들은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로 인해 지구의 도처에서 잇따른 여러 내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내란들은 아주 소규모이긴 했지만 매우 다루기 어려운 양상을 띄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인들은 그에 앞서 행성 말데크의 인공적 달을 끌어다 놓았었는데, 그들은 가이아 여신이 물리적으로 균형을 취하게 하는데 이것을 사용했다. 이제 바라던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여러 내란과 반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이 달을 이용하려고 했다.

반란은 중기 제국의 1만년 기간 전체에 걸쳐 계속되었고, 아틀란티스 사회의 중추 엘리트 세력들은 이로 인해 많은 자기 분석과 함께 당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되자 여러 다양한 태양계 안의 전초기지에서 온 교활한 변절자들은 침투자들을 보내서 아틀란티스 사회의 중추 세력과, 새로 세워진 씨족들의 운영심의회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침투해온 변절자들은 반 레무리아 당파에 반대하는 아틀란티스 사회의 중추에게 그 책임을 물어 그들을 강력히 응징할 것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강한 요구는 공포정치, 고문 그리고 인권을 무시한 엄한 심문의 통치를 초래했고, 아틀란티스 사회의 중추로 하여금 극도로 마음이 동요하고 의견이 갈라지게 했다.

이제 중요한 문제는 아틀란티스 정부를 안정시켜 줄 무슨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단 방법이 달성되면 다음 문제는 세계를 다스리는데 이 안정성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였다. 안정을 자아내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여겨졌던 방법은 소위 하느님의 힘을 창출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었다. 우월한 지배계급이 확립되고, 자신은 하느님의 힘에 의해서 권능이 주어졌다는 거짓 꾸밈으로 유지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부가 절대로 필요하다고 아틀란티스의 왕립운영심의회는 단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것은 이전에 지켜졌던 권력의 균형과는 모순되는 것이었다. 레무리아 시대에 아틀란티스의 구제국은 각각 왕을 모시는 열 개의 통치 구역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왕이 아틀란티스의 운영심의회를 형성했다. 그런데 새로운 사상은 이 열 명의 왕들 중에서 한 명을 최고의 통치자로 선출하자는 것이었다. 나머지 아홉 명의 왕은 지배하는 왕을 위한 내각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역 통치자들이 선출한 후보자들로 구성된 여러 관직에서 통치위원회, 즉 자문기관을 조직할 권한이 주어졌다.

전제정치가 오름세였고 중기 제국 말엽에는 이렇게 바짝 고삐가 죄어진 통치 조직 제도가 아틀란티스를 완전히 지배하고, 평화와 안정의 한 시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중대한 어려움이 빠르게 발생하고 있었다. 중기 제국에서 교육받았던 많은 새로운 세대들이 통치하는 간부들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틀란티스는 실패한 제국이라고 분명히 말하며, 레무리아식의 정부 체제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반항 운동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런 욕구들은 용납되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 집단은 아틀란티스인들이 이오니아(Ionia)라고 불렀던 곳, 즉 오늘날의 남부 유럽으로 추방되었다(그림 6-16). 추방된 반란 지도자들은 그들이 아틀란티스인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굴복할 뜻이 생길 때까지는 이오니아에 남아 있도록 강요를 받았다. 그런 조치가 반란자들을 아틀란티스 식의 통치에 우격으로 가담시켜 주기를, 중추 지배층은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다른 방향을 취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반란 집단은 고대의 레무리아 제국의 정부와 유사한 정부를 만들기로 작정했던 중추적 지배층의 인사들뿐만이 아니라, 대표적 과학자들과 행정관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반역자들은 은밀히 레무리아 식 정부를 다시 만들어 냈고, 또한 지하운동(underground movement)을 통해서 그들의 음모를 역수입시키기 시작했다. 이 지하운동은 인간 문명을 레무리아 대륙에 전달하는 일을 맡았던 원초적 인류집단(시리우스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여, 이른바 오시리우스(Osirius)숭배자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신제국이 들어서서 3천년 내지 4천년이 되었을 무렵에는, 이 오시리우스 운동이 아틀란티스 사회에 심각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아틀란티스인들은 이제 이오니아 사람들을 살육함으로써 이들 숭배자를 말살시킬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틀란티스의 중추 지배층은 레무리아를 파괴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계획의 수정안을 이용해, 다시 이오니아를 파괴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 해결책은 아틀란티스인들이 플레이아데스, 켄타우루스 그리고 다른 변절자 동맹자들에게서 도움을 얻는 것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시간이 다소 걸렸고, 마침내 이오니아 사람들은 그들의 말살 음모를 눈치채게 되었다.

이오니아인들은 발달한 과학 지식 덕분에 이미 조기 경계망을 개발해 놓고 있었기에, 그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는 어떠한 달의 이동도 도표로 나타낼 수가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아틀란티스인의 모든 공격에 재빨리 반격할 수가 있었다. 이오니아 사람들의 이와 같은 능력은 거꾸로 아틀란티스의 계획이 스스로의 파멸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파괴될 당시에 아틀란티스의 왕은 아틀라스(Atlas)라는 이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 아틀란티스의 중추 지배층의 대다수 사람들은 이오니아가 파괴되면, 이오니아에 있던 추방된 집단과 그들의 지하운동이 어떻게 반발을 하게 될지 궁금하게 여겼다. 아틀란티스 사회의 중추가 알고 싶었던 것은 이 공격이 지하운동이 지니고 있는 모든 위협을 정말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였다. 이런 가능성은 또한 리비아, 이집트 제국과 그 중추적 지배층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오니아가 공격을 당하면 자신들이 어찌될지 걱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당시의 아틀라스왕은 레무리아문명을 재수립하는 움직임을 은밀히 지지하고 있었다. 아틀라스는 이오니아로 추방되었던 지하운동가들을 기념하여, 자신의 아들에게 오시리우스 또는 오시리스(Osiris)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오시리우스는 부왕의 궁전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파괴되지 직전에 아틀라스는 왕의 죽음을 노리던 모반자들을 타파하기 위해서, 부인인 무우 여왕과 아들 오시리우스를 각각 다른 두 방향으로 파견했다. 아틀라스는 무우 여왕과 그녀의 남동생 마얌 공작을 아틀란티스의 주력부대와 함께 중앙 아메리카로 보냈다. 그리고 아들 오시리우스와 대다수의 사제들, 기록 보관자들은 모두 리비아, 이집트 제국으로 보냈다(그림 6-17).

아틀라스는 이들 파견된 사람들이 아틀란티스의 파괴 후에 레무리아 문명을 재건할 수 있는 제국의 역할을 할 여러 지역들을 개척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소망은 셋(Seth)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아들, 즉 오시리우스의 동생의 행동 때문에 좌절될 운명이었다. 셋은 리비아, 이집트를 다스리던 통치자로서 자신은 진정한 아틀란티스식 믿음의 최후의 잔존자이며, 자신의 주목적은 아틀란티스 제국을 재수립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던 것이다.

이들 상반되는 믿음은 오시리우스와 그의 동생 셋 간의 큰 알력을 초래했다. 태자 오시리우스의 아들 호루스(Horus)는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그는 부왕이 사망하면 뒤를 이어 리비아, 이집트 제국의 왕이 될 차례였다. 호루스는 삼촌인 셋이 곧 군사적으로 그의 아버지에게 대항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어, 부왕에게 그 사실을 경고했다. 그러나 오시리우스는 셋의 명확한 성격과 자신들의 아버지 아틀라스의 의견에 대한 동생의 충성심을 믿었기 때문에, 셋의 임박한 공격에 대한 아들의 경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중에 마침내 오시리우스가 이집트에 상륙하자 셋은 그가 리비아, 이집트 제국의 왕이 되는 것을 인정했다. 오시리우스가 왕이 된 것은, 아틀란티스의 법이 언제나 장자통치방식(elder brother rule)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시리우스의 왕위는 잠정적인 것이 될 운명이라고 셋은 믿었다. 결국 자신의 왕국을 재건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자 그는 오시리우스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자신의 군대를 나일강으로부터 오늘날 중동이라고 불리는 '수메리아(Sumeria)'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단 한 번의 대공격으로 오시리우스를 파멸시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편 호루스는 그의 군대를 시나이 반도로 이동시켰는데 거기서 그는 양군의 전체 균형을 깰 수 있는 새로운 발견, 즉 셋의 군대를 패배시킨다는 놀라운 발견을 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승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새로운 문명이, 그 무렵 이 전쟁에 새로운 참가자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지하제국 아갈타(샴발라:레무리아시대의 유 제국)는 제국의 태자의 통치하에 인도에 새로운 지상 제국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위세를 원상 복귀시키기로 결정을 내리고 있던 상태였다. 아갈타의 태자는 라마(Rama)라는 이름이었고, 이 제국은 그의 이름 라마를 가지고 지금의 시대까지 대대로 전해져 왔다.

이 라마 제국은 초기에는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갈타 사람들은 자신들의 제국이 셋의 수메르 주둔 군대를 격파하기에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했다. 지상으로 나온 이 새로운 아갈타 문명은 공군과 우주군으로 호루스를 수호함으로써 그를 거들었다. 이들 군대는 호루스가 셋의 군대를 공격할 수 있도록, 시나이 반도에 일련의 잠정적 전초 기지를 세우는 것을 도왔다. 마침내 시나이 반도의 동북쪽 끝에서의 격전에서 호루스는 셋을 성공적으로 공격하여 살해했다.

그 후 셋의 아들들은 팔레스티나를 거쳐 수메르 지역으로 도망가서 고대의 발단이 되는 문명을 창시하였다. 그런데 셋의 자손인 수메르 사람들은 이집트에서의 그들의 통치를 되찾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지구의 표면에 혹시 남아 있을 수도 있는 레무리아의 그 어떤 잔존물도 단호히 말살하겠다고 수메르 사람들은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호루스를 공격할 수 있는 계획을 짜내는 일에 착수했다. 이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 호루스는 인도의 라마 제국과 협약을 맺었다. 이러한 연유로 셋의 아들들은 인도의 라마 제국에 대한 일련의 공격을 감행했고, 호루스는 그의 이집트 군대로 이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 계속되는 방대한 규모의 파괴적인 전쟁은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대부분의 문명 세계의 파멸을 초래하는 듯이 보였다.

마침내 최후의 수단으로 제국들의 권력층은 지구상의 수정사원들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원들은 지구 표면에서 떨어져 대기권 상층부에 존재하고 있던 둥근 천공을, 자기 자리에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수정 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엄청난 양의 얼어붙은 투명한 물(얼음)로 된 둥근 천공을, 전쟁을 벌이고 있던 당사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세 제국은 오직 적의 영토만 물 속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한 물이 낙하할 것이고, 자신들은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수정 사원들에 대한 공격은 동시에 행해졌고, 그 결과 하늘의 둥근 천공의 구조물을 찢어 버리기에 충분한 양의 수정 망이 파괴되었다. 이런 사태의 진전은 둥근 천공의 종말과 하늘에서의 방대한 양의 물의 낙하(역사적으로 그리고 성서에서 대홍수라고 언급했던 바로 그 사건)을 초래했던 것이다.

여기서 둥근 천공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지를 잠깐 살펴보자. 둥근 천공은 두개 층에 위치했던 방대한 투명한 물의 방패였는데, 하나는 지표에서 대략 1만 5천 내지 1만 8천 피트(4.5~5.5 km) 떨어져 있었고, 또 하나는 지표에서 대략 3만 5천 내지 3만 8천피트(10~11. 5km) 떨어진 더 높은 층에 있었다(그림 6-18)

(그림 6-18:둥근 천공의 해설)

기원전 약 9,500년에는 천공이 아직도 제 자리에 있었다. 둥근 천공1은 아틀란티스가 파괴되었을 때 붕괴했다. 그 둥근 천공은 기원전 9,400년 리비아, 이집트 제국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둥근 천공 1과 2는 기원전 약 4,000년에 라마-리비아-이집트 전쟁 중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대홍수를 야기했다.

둥근 천공2:지표에서 35,000내지 38,000피트 둥근 천공1:지표에서 15,000내지 18,000피트

둥근 천공은 맑은 렌즈처럼 보였던 얼어붙은 물(얼음)의 층이었다. 하루에도 서너번 일정한 때 햇빛이 반사되면 그것은 밑의 세계의 거울 구실을 했다. 지구의 도처에 있던 수정 사원들이 천공을 떠받쳤다.

이 두 층은 모두 잘 구성되어 있었고, 지구에 생명을 부여하는 대기권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만약에 둥근 천공이 낙하한다면 대기권이 터질 것이었다. 그런 상황은 위험한 방사선이 지표까지 침투해서 지구인들이 오늘날 일기(weather)라고 부르고 있는 불안정한 대기의 집합체를, 즉 매우 가지각색의 기후가 발생하도록 할 것이었다.

일찍이 둥근 천공이 있던 시대에는 비는 전혀 내리지 않았고 바람도 거의 없었으며 4계절이 이 사실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정 사원들에 대한 동시 발생의 공격이 감행되었을 때 너무 많은 수의 사원들이 파괴되었고, 이 파괴로 말미암아 둥근 천공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던 것이다.

이 거대한 구멍 때문에 둥근 천공의 조직 전체가 동요했으며, 그 조직의 악화와 더불어 무서운 호우가 쏟아졌다. 단 일격에 라마제국. 이집트 제국 그리고 수메르제국은 전무후무한 대홍수로 망했던 것이다. 이 홍수는 세계적으로 퍼져 두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들, 그리고 여러 대양의 해분(ocean basins)(주:해분–해심 3천~6천m 깊이에서 약간 둥글게 오목 들어간 곳)까지도 에워쌌다.

그 대재앙이 뒤에 남기고 간 것은 대충 40일 동안의 비가 쏟아졌던 시기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신세계였다. 인류의 옛 역사는 사실상 깡그리 물에 떠내려 가 버렸고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구전의 이야기와 전설들이었다. 지구인간은 이들 전설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대홍수까지의 장황한 지구 역사에 대한 설명을 끝낸 와슈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홍수가 끝난 후, 여러분의 조상이 만들어 냈고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도래했습니다. 앞서 있었던 고대의 민족들과 통치자들은 여러분의 남신들과 여신들이 되었고, 그들의 시대는 바로 여러분의 신화의 황금시대로 이야기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지구 인류로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방금 묘사한 역사의 의미와 이 역사가 여러분의 행성에 바야흐로 일어나려고 하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언급한 자료에 관해 여러 가지 질문이 이제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다음 부분에서 “아틀란티스에서 대홍수까지”의 정보에 관해서 버지니아가 질문하고 와슈타가 응답한 내용이다.

질의응답부

버지니아:와슈타, 오늘날 지구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아틀란티스에 관한 어떤 물질적 증거가 있나요?

와슈타:스페인의 남서 해변 앞바다에 있는 대륙붕을 따라서 뿐만 아니라, 대서양의 카나리아 군도 둘레에는 아틀란티스의 광대한 지역들이 있습니다. 또한 바하마 군도에도 서너 곳, 그리고 안티레스 군도(쿠바와 푸에르토리코)라고 불리는 곳의 바로 서쪽과 남쪽 지역에도 있습니다. 대서양 중앙의 해령(주:해령–바다 밑에 산맥 모양으로 솟은 지형) 주위 여러 지역에는 아틀란티스 왕국의 고기물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남국 캐롤라이나 주 앞바다에서도 역시 발견되었으나 현재 공개되고 있지 않는 다른 지역들이 있습니다.

버지니아:그 지역들 중에는 다른 장소들보다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적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도 우리는 그 유적들을 앞으로 찾게 되기를 궁리만 하고 있어야 하나요?

와슈타: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잡다한 사원 유적들은 시리우스인들이 지구에 본격적인 접촉을 시도할 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니 아틀란티스는 적절한 시기에 독특한 식으로 여러분의 행성의 역사에 그 발자국을 보일 겁니다. 여러 나라 정부는 우리가 방금 진술한 유적들을 이미 발굴해서 우리의 논점을 입증하는 여러 물품을 발견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마음의 긴장을 풀고 아틀란티스 왕국은 바야흐로 적절한 때에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버지니아:아시아의 유 제국에 관해서인데, 우리가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지질학적이거나 혹은 인류학적인 유물들이 있습니까? 또는 그런 제국의 존재를 말하는 이미 발견된 유물들이 있습니까?

와슈타:이 제국의 유적은 바로 중국의 먼 서쪽 사막에서뿐만 아니라, 광대한 동북 지구에서 몇 군데 발견되었습니다. 이 독특한 제국에 관해서 말해야 할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존자들은 유 나라를 떠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가서 전설적인 아갈타, 즉 샴발라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왕국은 여러분의 지상인간을 지하 인간과 결합시켜 주는 관건인데, 그들은 시리우스인들이 공개 접촉이 행해지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샴발라, 즉 아갈카의 지하 세계가 곧 지상으로 나온다는 말씀입니까?

와슈타:네, 이것은 여러분의 행성의 지하 인간들에 의해서 '위대한 재결합(the greant reunion)'이라고 불려져 온 것입니다.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및 유럽의 광대한 지역 곳곳의 지하에 존재하는 모든 레무리아의 이식지들이 지구의 표면에 나옴으로써, 성공적으로 복귀하는 것이 허용될 때를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그들의 거주지역들은 대부분 숨겨져 왔거나, 또는 분명치 않은 현실로 보이게 해 왔으므로 그들은 방해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버지니아:우리가 지금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대략 어느 정도이며, 그들은 현재의 활동 장소에서 회색 피부의 우주인과 그 밖의 유인 생물들의 행위에서 안전합니까?

와슈타:그들은 레무리아의 종말 이후 레무리아 식 집단 통치 양식을 간직하면서 완전한 지하의 은둔 상태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아주 안전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인구는 모두 합쳐 약 2,500만 명 정도입니다.

버지니아:당신은 아프리카에도 몇 군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장소들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와슈타:아프리카 도처에 있는 주요한 장소 중의 하나가 이집트의 대피라미드인데, 그것은 레무리아의 많은 기록의 에너지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들은 대피라미드의 기저 가까이의 비밀에 부쳐둬야 하는 특별한 방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방은 그것들을 보아서는 안되는 자들로부터, 기록들을 지킨다는 유일한 목적을 가진 특수한 신령 에너지의 사용에 의해서 완전히 안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버지니아:네, 고맙습니다. 라마 제국과 종교 또는 철학으로서의 오늘날의 힌두교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와슈타:라마는 아갈타에서 왔었는데 그것은 인도에 우월한 왕국을(협조적인 레무리아식 문명권의 복귀를 가져올 왕국을)재건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은 불행하게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성공을 막았던 플레이아데스와 켄타우루스에서 온 변절자들의 여러 가지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 힌두교의 경전들, 즉 마하바라타(Mahabarata) 및 라마야나(Ramayana)들 속에 서술되어 있는 것으로서 그 서사시들은 후에 여러 가지 신화 형식으로 발전되었고, 당시의 역사를 잘 담고 있습니다. 라마 제국의 에너지와 유산은 가지각색의 사원들에 남겨졌었고, 그 중의 일부는 지금부터 2천년 내지 3천년 전에 현대 힌두교가 대두할 때까지도 잔존했었습니다. 이들 사원의 기록들은 안전하게 몰래 보관되어 왔고, 그것들을 이해할 줄 아는 자들에게는 현대 힌두교의 토대 역할을 해 왔습니다.

버지니아:오늘날 인도에는 지하의 인간 가족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특수한 유물들이 있습니까? 혹은 흥미를 끌 만한 지리적이거나 인류학적인 유적들이 있습니까?

와슈타:인도에는 고대 도시의 자취, 즉 사원 유적들이 인더스 강과 갠지스강의 유역들, 그리고 다른 강의 유역에 많이 있습니다. 이들 유적은 모두 라마와 레무리아의 잔존물들입니다. 이것은 인도가 오늘날 여러분이 종교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에서 다루고 있는 이른바 '예식 풍습'을 위한 주요한 영적 중심지 중의 하나였기 때문인데, 그 종교학은 레무리아인들의 발상을 토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들 예식 풍습과 신앙은 오늘날 실론, 즉 스리랑카라고 불리는 곳을 비롯해 다른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음은 물론 오늘날의 하와이 군도에도 전달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본격적인 접촉시 발견되고 탐색되고 이용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지니아:거기에는 이스터 섬도 포함되나요? 혹은 그 섬은 종류가 다른가요?

와슈타:이스터 섬은 접촉을 위한 구역으로써 레무리아의 남서부와 동남부로부터 오늘날 하와이라고 불리는 동북부(당시의 가장 중요했던 과학 중심지)까지 과학적 정보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은 지식의 주요한 운반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지식은 교통 수단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의 행성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은 특별한 기술적인 장치에 의해서도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버지니아:이른바 둥근 천공은 누가 처음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습니다.

와슈타:지금으로부터 약 3천 5백만년 전에 여러분의 세계에 왔던 최초의 에테르성 문명인에 의해서 둥근 천공은 건설되었습니다. 태양의 방사선과, 정기적으로 여러분의 태양계를 통과하는 다른 위험한 각종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려고 이 공사는 행해졌던 것입니다. 여러 종류의 문명과 침략이 발생함에 따라, 이 천공은 수차례에 걸쳐 유지되고 깨지고 그리고 재건되었습니다. 따라서 최초의 에테르성 문명 이후로 이 행성의 지질학적 역사 동안, 사실 여러 번의 홍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버지니아:그것은 제자리에 다시 놓아질 수 있을까요?

와슈타:지난번의 완전한 둥근 천공이 하늘에 있었을 때 제자리에 있었던 작은 수정 사원 중의 몇몇은 아직도 있지만, 다른 사원들은 앞으로 적절한 때에 제자리에 세워지고 재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취할 원상복귀 조치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재건할 예정인 수중 사원의 원래의 그리드는 도달하기 어려운 다른 여러 곳들뿐만 아니라, 지금은 바다 밑에까지도 이미 조립해 놓은 상태입니다. 이용하거나 가동시키기가 비교적 수월한 수정 사원들은 물질적 차원에서 사용될 것입니다. 나머지는 원물(originals)을 복제할 홀로그램 이미지의 에테르성 에너지 양식을 통해서 사용되어질 것입니다. 시리우스인들의 본격적 접촉이 완료되면 적절한 시기에 이들 특수 지역은 활성화될 것이고 그러면 둥근 천공은 하늘에 되돌려질 것입니다.

버지니아:네, 고맙습니다. 버뮤다 삼각 해역은 당신이 수정 사원이라고 설명하고 계시는 것과 유사합니까?

와슈타:바다 밑에 있는 이들 여러 가지의 과학적 장치는 실은 수정사원 공정(process)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아틀란티스의 파괴 후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버뮤다 삼각 해역은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호가 되었습니다.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가는 여러 집단은 운송과 통신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이 삼각 해역을 이용해 왔습니다. 이 삼각 해역이 활성화되면 다른 차원과의 문호가 열리게 됩니다. 통신 지점의 토대가 되고 있는 그 삼각 해역 안에 있는 모든 물체는 이 문호 효과를 겪게 마련이며 그 결과 그것들은 사라지거나 시간의 다른 차원적 공간으로 이동됩니다.

버지니아:네, 고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다른 사원들이 더 있습니까?

와슈타: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도처에 그리고 태평양과 대서양의 해분들에 있는 잡다한 사원들 외에도 일본 앞바다와 하와이 앞바다에, 캘리포니아 해안과 북아메리카의 대서양 해안을 따라서 그리고 유럽에도 사원들이 있습니다.

버지니아:그 사원들은 크기와 구조면에서 모두 비슷해 보였나요, 혹은 몇몇 점에서 닮지 않았던가요?

와슈타:사원이 그리드의 주요 지점인지 혹은 지원(support)지점인지에 따라서 사원들은 달랐습니다. 그리드의 주요 지점은 거대한 사원으로서 그 기본 구조 설계와 실제의 크기 면에서 거의 기제의 대피라미드의 크기였습니다. 다른 지원 사원들은 이 특수한 원형의 크기의 절반에서 1/4, 또는 1/8 정도였습니다.

버지니아:과테말라에서 멕시코 일부 지방까지 이어지는 피라미드들은 모두 어느 정도 그 그리드들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와슈타:그들은 성집합점 그리드 지점에 세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성스러운 그리드 지점에는 두 가지 용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 지점은 모든 방문자들에게 에너지를 주입함으로써 그들에게 활기를 돋구어 줍니다. 둘째로 그 지점은(주위에 있는 얇은 휘장을 통해서) '저승(other side)', 이른바 영적 차원과 교신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들 장소에 구조물이 세워질 때에는 이 두 가지 기본적인 목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축조되었던 것입니다.

버지니아:우리가 계속 논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질문이 많지만, 둥근 천공의 낙하가 지구의 오늘날의 기후와 방사선의 어려움을 어떻게 가속화해 왔는지를 확증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오늘의 질문을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와슈타:둥근 천공이 복잡한 완전체였을 때 그것은(여러분의 행성의 대기권을 위해서 서너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지구 영단의 관리와 요청대로 수정 사원들을 건조했던 사람들의 관리하에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방사선과 온도의 도수를 낮추었습니다. 그 결과 지구의 기후는 북극에서 남극에 이르기까지 각각 5도 이내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열대지방은 섭씨 23~26도 였고 극지방은 섭씨 21~23도 였습니다. 그래서 남북 극지방의 전역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빙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기권에서의 두 번째 주요한 차이점은 바람과 구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구름이 없어서 날마다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이 사실을 한층 더 뒷받침해 주었던 것은 바람이 극미해서 시속 5내지 7마일(8~11km)이 최대한이라고 할 정도로까지 유지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구름이 없었기 때문에 폭풍우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비(rain)라는 것은 지금 여러분의 시대의 독특한 현상입니다. 둥근 천공이 온전히 존재했던 시대의 대기권은 심신을 기운 나게 해주었는데, 방사선 에너지가 프라나를 둥근 천공에 저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둥근 천공은 마치 거대한 냉장고인 양 프라나를 유지했고, 그 안에서 프라나는 둥근 천공을 가로질러 떠돌았습니다. 따라서 둥근 천공은 프라나, 즉 에너지의 냉장고라고 불러도 좋을 겁니다.

여러분의 행성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이 에너지에 의해서 활기를 돋구어졌습니다. 신체의 노화를 야기하는 더위와 다른 방사선은 둥근 천공에 의해서 지표 대기권 안에 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부산물은 별들이 확대되어 보였으므로 하늘은 흡사 거대한 망원경을 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둥근 천공은 기후의 큰 차이, 폭풍우, 그리고 극단적인 날씨를 발생시키는 황폐화된 대기권을 예방했고, 나아가 다량의 방사선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둥근 천공의 붕괴 후 방사선은 마침내 인간의 신체 크기를 위축시켰고 점차로 수명도 제한했습니다. 여러분의 현재의 대기권은 둥근 천공이 생명을 보호하는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매우 불안정합니다. 즉 오늘날의 둥근 천공은 옛날에 그랬었고, 앞으로 다시 그렇게 할 예정인 것처럼 완벽하게는 생명을 보호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지니아:그러니 수백 살이 된 장수자들에 관한 성서의 이야기는 둥근 천공이 있었기 때문이군요?

와슈타:그렇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행성의 참 역사가 모습을 드러내면 여러분이 무엇에서 진화했는지를 더 잘 이해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광명의 시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지구의 참 역사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었는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오늘의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버지니아:우리는 당신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와슈타: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더 전하고 싶습니다.

fib/포톤벨트/제6장.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9/06/15 23:00 (바깥 편집)